728x90
반응형
1982년 12월 19일
40여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도 없이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였다
송방리 논에 노지 딸기를 심어 놓고 재배하는 친구 원두막에서 노닥 거리고 있는데 읍내에서 송방리로 쭉 뻗는 신작로로 여자가 바바리코트를 입고 걸어가고 있다
고즈넉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송방리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저 여자 누구냐 물어보았더니 동창이란다.
국민학교 여자동창 난 이름도 잘 모르는...
몇 년이 지나갔다 군대도 제대했다
우연히 누가 갖다 준 공무원 시험 안내장 덕분에 생각하지도 않던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교육청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동내 친구 녀석 누나가 시집을 간다고 하길래 잔치집에 갔더니 그 친구 놈이 여자 동창들과 합석을 하란다
우리 동내에도 여자 동창이 있었는데 그 여자동창 애가 다른 동내 동창애랑 같이 온 모양이었다
울 동네 여자 동창은 나와 잘 아는 사이였고 같이 온 여자 동창은 첨 보는 것 같았다
첫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생각이 있으면 행동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고민 같은 것도 없었다.
담날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더니 순순히 나온다고 한다
알아보니 그때 딸기밭 바바리 입은 여자애다. 와 이게 웬일!!!!
나는 저 여자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소위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그때는 통금이 있을 때였다. 여자 친구 큰오빠가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사귀는 건 좋은데 밤늦게 만나지 말라고 한다.
기분이 엄청 상했다. 그날 그 친구와 송방리 뚝에서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했다기보다는 시간을 끌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큰 오빠한테 어깃장을 놓았다.
한 번은 장인 되실 분 제삿날이 돌아왔는데 친구들을 데리고 처갓집(?)을 갔다
결혼도 안 한 처갓집 장인어른 제사를 지낸다고 가자고 한놈이나 같이 간 놈이나 그 친구에 그 친구 놈들이다
장모님 께서 현명하신 분이라 나무라지도 안 하시고 술상을 봐주셔서 처음으로 장인께 인사를 드렸다
울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마침 집에 작은아버님 이 오셔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동생이 술을 하고 있었다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해서 여자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우리 집 근방으로 오라 했다
비가 솔솔 내리는 여름날인 것 같다.
동생에게 감리교회 앞에 어떤 여자분이 우산을 쓰고 있을 것이니 모셔오라고 했고, 그날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아마 시댁부모님께 청바지 차림으로 양말도 안 신고 처음 인사를 드리는 것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41년이 흘렀다 (한 여자라고 너무 오래 살았다 ㅎ)
오늘이 그날이다 1982년 12월 19일 울 어머니 생신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며칠 전 같은데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로 산 시간보다 긴 기간이다
나와의 결혼 생활에 처는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집안 분위기가 처가 와는 상당히 달랐다 처가는 좀 가정적인 분위기라면 우리 집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이고 처가가 여유 있는 집이라먄 우리 집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님은 이장 보신다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셨고 할머니도 같이 살았다.
집안이 기울어져 하숙을 쳐서 생활하는 정도였다.
결혼 후 몇 개월은 따로 살았지만 어머니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았다
나는 그 생활에서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가능하면 처의 말을 안 들어주겠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에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옳은 생각이었다
어른들 하고 같이 살다 보면 부딪칠 일이 어디 한두 가지 인가?
그걸 젊은 우리가 이해하고 살아 야지 그걸 하나하나 따지고 살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가?
처가 할머니나 부모님 이야기하려고 하면 절대로 듣지를 않았다.
나도 알지만 해결책이 없었다.
그냥 저분들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사는구나! 그걸 인정하면 모든 것이 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내가 복이 많은지 처는 그걸 묵묵히 따라와 줬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
결혼하고 8년여 만에 부모님과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도교육청으로 발령을 받아서 대전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셋방 살이를 해봤다. 대전에서 2년 8개월 동안 이사를 세 번이나 갔다
한 번은 퇴근하려는데 이사 갔다고 이사 간집으로 오라고 한다.
물론 전에 살던 집하고 길 하나 건너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동생하고 둘이서 이삿집을 다 옮겨 놓았다.
지금 생각하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처는 아무런 불편 한마디 없이 내가 신경 쓰지 않도록 다 처리해 주었다
그렇게 살다가 승진해서 청양으로 오는데 같이 이사 왔다.
다른 공무원 친구들이 다 같이 고향 으로 이사 간다고 하니 어떠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하물며 부모님 하고 같이 살러 간다고 하니(그때는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한 번은 처에게 아침은 빵을 먹자고 이야기했다가 (난 잘한다고 한 이야기다) 멋쩍어 혼난 일 이 있었다
처가 하는 말이 "내가 자기한테 하루에 밥 한 끼도 안 해준 여자로 만들려고 하느냐고"?
"점심은 직장에서 먹고 저녁은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서 먹고 오지 않느냐고"?
有口無言이다 내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처한테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난 장모님을 엄청 좋아한다.... 딸을 잘 키우고 가르치셨다고 ㅎ
이야기를 다 쓸려고 생각하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다
언젠가 한번 자선전을 쓰면서 자세히 지나온 세월을 의미해 보련다
다행스럽게도 공무원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정년퇴직을 했다
공무원 생활에 일말의 후회도 없고 나 스스로 결산한다 최선만 한 게 아니라 잘했다고 ㅎ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 것도 처의 헌신적인 뒷 밭침이 있었서야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많다
기왕이 사는 거 사람처럼 살고 싶다
억지로 사는 것보다는 서로 사는 것이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현재 까지는 남들이 어떠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잘 살았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얼마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서로 헤어지는 날까지 기분 좋게 좋아하면서 살자
사랑과 전우애로 뭉쳐서!!!
예영아!!!!
728x90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것이 내책임 이다!!!! (116) | 2023.12.24 |
---|---|
극장구경 (94) | 2023.12.23 |
뭐라 해도 오물은 피하고 봐야 한다 (135) | 2023.12.18 |
산다는 것 (39) | 2023.12.13 |
둔감함이란 위로 (86) | 202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