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봄이가 어린이집에 정식원생으로 등원하는날이다
봄이가 며칠전 부터 어린이집 청강생으로 다니고 있다.
봄이 엄마가 유아 휴직 기간을 끝내고 7월 1일 부터 복직을 하기 때문에 오늘 부터 정식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한것이다.
난 처음에는 봄이가 나이도 어리고 해서 나와 처가 좀 어렵더라도 6개월 정도는 더 집에서 데리고 있다가 내년에 어린이 집에 보낼려고 했다.
그래서 올해 가을에 해외로 여행을 갈려고 했던것을 내년 봄으로 미루어 놓았다
처와 아이들 한테도 내년에 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이야기 했는데 처와 딸애가 어린이집을 7월부터 보내겠다고 결심을 한모양이다.
처는 내가 어려울 것 같으니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하는것 같고 딸애도 어린이집에는 봄이 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있고 보내도 별일 없을 거라고 지나 가듯이 나 들으라고 이야기를 한다.
난 어린 아이들이 나이에 맞지 않게 집을떠나 부모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지금 부터 50년 전 1969년도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하는 해였다.
그 당시는 중학교를 입학시험을 봐서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공주중학교에 지원 합격해서 그해 공주로 유학(?)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것이 아버지와 함께 이불보따리를 들고 차부(터미널을 차부라 불렀다. 일본식 언어 아닌가 생각된다)에서 버스에 탓다(그때는 청양에는 시내버스가 없고 대전 가는 급행, 완행버스만 있었다)
공주에 살고 있는 먼친적집에 하숙을 정하고 아버지와 함께 다음날 있을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옮겨 졌지만 옛날 차부에서 어머니는 차에 타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얼른 고개를 돌리신다.
아마 눈물을 훔치시는지 손수건으로 눈 근처를 어루 만지신다.
난 그때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 못했지만 오늘 내가 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심정하고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애지중지 키우시던 큰아들이 객지로 공부한다고 떠날때 그심정을 난 그당시는 왜 우실까 하고 의아해 했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돼서 군대를 가도,혹은 객지에 학교를 보내도 먹고 자는 것만 같이 안하는 것처럼 서로 소통이 되는 시대가 됐지만
그당시만 해도 집에 연락을 할려면 부모님전 상서로 시작하는 손편지를 쓰던지 우체국에 가서 시외전화(그당시 3분 한통화가 25원으로 기억된다. 한달 하숙비가 3000원이었다)를 신청해서 집에 전화를 걸던 시절 이었다.
난 그때 까지만 해도 중학교에 간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그런지 집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을 못했다.
우리 어머니가 왜 저럴실까 하고 의아해 했다.(지금은 공주하면 바로 옆동내 처럼 이야기 하지만 그당시만 해도 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했다)
입학식을 끝내고 하숙집에서 아버지 하고 헤어질떼도 덤덤하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별 말씀이 없으시던 분이었다
오늘따라 나한테 자꾸 말을 시키신다. 전에 안하시던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하신다. 몸건강히 공부 열심히 하라고도 하신다.
청양에 있을때도 늘 하시던 말씀 인데도 아버지 표정은 청양에서 하실때와는 분위기가 사뭇다르셨다. 청양에서 그런말을 하실때는 엄숙하고 무서웠는데 이곳 공주에서 떠나시면서 하시는 말씀의 분위기는 엄숙하기 보다는 나를 쳐다 보시는 눈이 안쓰럽고 애처롭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그날 저녁 부터 나는 우리 부모님들이 왜 저런 표정을 지으셨나 조금씩 느끼기 시작 했다.
우선 저녁 밥부터가 입에 맞지 않았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난 입이 짧았다.
쉽게 이야기 해서 편식이 너무 심했다.집에선 그걸알아서 어머니가 음식을 내 입에 맞게 해주셨지만 하숙집에서 내 입만만 맞출수는 없는것 아닌가?
하숙집의 기본은 콩나물국 인데 콩나물 국에서 필연적으로 파가 들어 간다.
난 파와 마늘을 먹지 않았다.
그 때 내나이 14살 이었다. 그나이에 객지 생활을 하면서 느켯던 외로움과 허전함을 지금도 내생활에 깊이 뼈저리게 심어 놓고 살고 있다.
난 왠만해서는 밖에서 안잔다. 택시를 타고 왔다가 새벽에 나가더라도 밖에서 혼자 잠을 자는것을 끔찍하게 싫어 한다.
물론 내 손녀 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 지만 난 봄이의 마음을 조금을 알것 같기에 되도록 이면 어린나이에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것을 가능하면 피 할려고 한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 이기도 하다.
너무 내가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고민도 해봤다.
나도 어렵겠지만 처는 훨씬 더 어려울것 같다. 허리도 많이 불편해 하는데 난 나 보다는 처때문에 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건을 달아서 묵시적으로 동의 했다.
봄이가 적응할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었다.
어른들이 편하기 위해서 적응도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결코 용납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자신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동의를 했으면서도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인제 첫돌지난지 4개월 그러니까 16개월 된아이를 공동체 생활에 맞긴다는게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강생 첫째날은 9시에 가서 두시간 만에 왔다. 딸애가 어른들이 생각 했던것 보다 봄이가 잘 놀았다고 한다
점차 시간을 늘려서 지금은 오후 3시쯤에 온다.
며칠전에는 딸애가 어디를 가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가 3시쯤에 데릴러 갔는데 어린이집 원장 말이 아직은 완전히 적응이 안되서 가끔 칭얼 대기도 하지만 곧 다른 노는 일에 팔려서 잘지냈다고 한다 . 참 다행이다
가능하면 데려 오는것은 내가 할려고 한다
솔이도 그렇게 했으니 나는 내가해야 할 일은 걱정은 안한다 왜냐 하면 내가 하면 되는 것 이니까..
이 아이는 제 언니와는 다르게 엉청 거칠게 활동적이다.
그렇다고 솔이가 활동적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활동폭이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내 자전거를 방에서 탈때도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안장에 서서 다른짓을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자전거를 안잡아 주면 떨어져서 크게 다칠 위협이 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아직은 말을 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 언니 정도만 하는데 말귀는 잘 알아들어서 심부름도 곧잘 한다
아침에는 솔이와 손을 잡고 방에서 응접실로 나오면서 솔이가 할아버지,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서요 하고 인사를 하니 봄이도 뭐라고 입으로 하면서 얼굴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아래위로 끄떡 거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얼마나 귀엽고 우습던지 아침에 기분좋게 웃었다.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이 저도 보기가 좋았던지 나에게 달려 온다. 얼른 안아서 오른쪽 무릅위에 올려 놓았더니 좋아 하면서 테레비젼을 쳐다 보고 있다. 쳐다 보는 모습이 진지 하다.
집중력이 언니 보다는 좀 더 있는 것 같다.
조금 있느니 솔이도 할아버지 왼쪽 무릎위에 앉는다.
양쪽 다리가 좀 저려 오지만 그자세가 난 불편 하지가 않다 . 정말로 행복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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