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마당 한쪽에 있는 구기자 심은 곳으로 갔다.
동내분(주로 80대 할머니)들이 구기자 순이 너무 웃자랐으니 좀 아깝더래도 과감히 잘라 버리 라고 하신다
내 방식은 제멋대로 크게 놔두는 건데, 지나가는 할머니들이 걱정을 하도 하셔서 민원 해소 차원에서 좀 성의(?)를 보이려고 한다.
구기자 순을 자르다 보니 넝쿨 풀 속에 안보이던 열매가 보인다.
한 달여 전에 손녀들과 할아버지 나름대로의 추억 쌓기 하려고 한 그룻에 천 원씩 하는 묘목(수박, 참외, 오이 , 가지)을 사다가 심었다
그 참외,오이 넝쿨이 파도처럼 구기자나무 사이로 맹렬히 몰려오고 있었다.
넝쿨 사이로 손녀 솔이의 앙증맞은 주먹만 한 참외가 세 개나 열려 있다.
혹시 땅에 닿으면 썩을 까 봐 줄기잎을 따서 참외 밑에 깔아 주었다.
참외를 드는 순간 수십 년 전 어머니와 참외를 샀던 모습이 눈앞에 환하게 비친다.
나는 중학교를 공주로 진학했다.
당시는 통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주 먼 친척집에서 하숙을 했다.
빨리 학교 졸업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최대의 바람이자 목표였다.
아마 지금 하라고 하면 집을 떠나 다른곳으로 안 간다고 했을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음식재료 중 파를 안 먹는다.
하숙집 주메뉴가 파가 많이 들어가는 콩나물 국인데...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인 것 같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께 " 엄마 참외 좀 사주세요?" 했다.
어머니가 나보고 양동이를 들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참외 사달라고 했는데 왠 양동이를 가지고 오라 하지?
시장 쪽으로 갈려면 대문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꺾어져야 하는데 어머니는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어디를 들렸다 가시려고 그러시는가?
교회 앞에 있는 구멍가게를 지나 백천리 쪽으로 올라가신다.
나는 그제야 시장으로 안 가시고 왼쪽으로 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용배 내를 건너 교월리 향교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과수원이 있었다.
지금은 백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과수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과수원 한쪽에 말무덤이라고 불리던 큰 무덤이 있었는데 지금도 유적지처럼 관리하고 있어서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
나는 어머니와 양동이에 노란 참외를 꽉 담아서 서로 맞잡고 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깎아준 노란 참외의 하얀 속살 맛이 어떤지 생각하지 못하고 먹었다.
나중에는 노란 속살은 마당에 버리고 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그 소리와 그 식감은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난 그 당시에 내가 다 큰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4살 먹은 어린아이인데! )
객지에서 학교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안쓰러웠을까?
그런 아들이 참외가 먹고 싶다고 하니 양동이에 한가득 사주셨다,
그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지금처럼 넉넉하게 살던 시절이 아니었다.
결혼할 때 처에게 했다고 하시는 말씀이 나의 정중앙에 아직도 꽉 차 있다
" 아들이지만 나도 어려운 아들이니 네가 잘 챙겨줘라"
생전에 잘 해들릴려고 나 나름대로는 했지만, 돌아가신 후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저려 올 때가 많다.
지나 보면 그당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지만 , 더 나은 길이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차피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그 후회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 보자고 다짐해본다
참외를 먹다보면 환경이 달라져서 그런지, 그때 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다
며칠 더 있으면 노란 참외는 아니지만 마당 한쪽에 있는 참외가 익을 것 같다.
엄마와 아들이 먹던 아늑한 그림을 아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
할아버지는 과거를 회상하고 손녀는 미래를 생각하는 동상이몽을 손녀들하고 리메이크하고 싶다.
하늘나라에 계신 울 어머니가 월봉암 대웅전 부처님의 미소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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