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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서 외소녀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재잘재잘 다정하게 들린다
무슨 소리를 하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보아도 소리만 들릴뿐 말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더니 배추김장 속을 넣으려고 응접실 바닥에 둥 그런 비닐을 깔면서 작년 김장 담그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아내와 손녀들의 말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바라보다
불현듯 내가 어렸을 적에 김장을 담그던 모습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친다
그 당시 김장을 할 때 냇가로 절인 배추를 가지고 가서 냇가물에 씻은 후 집에 가져와 배추 속을 넣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 흔한 고무장갑도 없이 차가운 물에 배추를 넣고 흔들어서 소금물을 빼는 일을 할 때 그 부근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손이 시리면 불을 쬐는 일을 할머니와 어머니 동내 아줌마들이 모여서 하는 그림이다
나는 왜 추운 때 김장을 담그는지 이해를 하지 못해 따뜻한 봄에 하지 않고 추운 날 김장을 담그는 어른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배추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150-200 포기 정도는 김장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냇가에 배추를 쌓아 놓은 것을 보면 시골집 뒷마당에 있는 두엄더미 보다도 더 높고 넓어 보였다
거기다가 무까지 놓으면 냇가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냇가뚝 바로 옆에 있어서 배추를 바구니에 담아서 날랐던 기억이 새롭게 보인다
옛 생각에 젖어 있는데 본격적으로 배추에 양념을 넣은 일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딸애하고 아들까지 나와 둥그렇게 앉아서 배추에 넣을 속을 얼버무리는 아내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배추가 내가 생각했던 양보다 훨씬 적었다
몇 포기 하냐고 물어보았더니 15 포기 란다
순간적으로는 "에게" 했지만 생각해 보니 요즈음 김장하는 집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계절을 안 가리고 싱싱한 배추가 지척에 깔려 있는데 미리 저장해 놓고 할 필요도 없고 배추 공장에서 맛있는 여러 가지 김치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굳이 집에서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배추 15 포기도 딸애와 아들은 안 가져간다고 한다
손녀들은 아직 어려서 인지 김치를 맵다고 하면서 잘 먹지를 않는단다
김장을 끝내고 돼지고기 수육에 막걸리를 하는데 아내가 김장이 너무 적게 했다고 걱정을 해 댄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먹을 김장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 들과 김장 담그는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자"
그랬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웃으면서 동의한다
난 우리의 집안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싶다
그런데 그 집안 전통문화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제사도 마찬 가지다
제물을 간단히 장만해서 그날 모여서 돌아가신 조상님들도 생각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잠깐 쉬면서 뒤를 돌아 보는 힐링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출장을 갔던 사위도 저녁에 왔다
가족이 다모여서 막걸리 판을 벌였다
나는 몇잔마시고 이층방으로 올라가소 누웠다.
피곤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편한 술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잠자다가 깨어서 화장실에 가는데 아래층에 전등빛이 환하게 비쳐진다
떠들썩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다
난 침대에 들어 누우면서 아래층 계단 문을 열어 놓았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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