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의 부처님, 다보여래 '불국사' 하면 떠올리는 게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우리는 그저 여행이나 사찰 순례을 통해서 그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많은 감명을 받지만 거기에 담긴 깊은 뜻을 간과하여 진실한 신앙의 대상으로서 살아 있는 생명의 힘을 간과하기가 일쑤이다. 나아가 다보탑은 많이 알고 있었도 다보여래에 대해서는 생소한 느낌을 받는 이가 대다수 일 것이다.
다보여래(多寶如來)는 산스크리트로 프라부흐타라트나 붓다(Prabhutaratna Buddha)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보물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뜻인데, 여기서의 보물이란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뛰어난 특성을 비유하는 것이다. 부처님에게는 보통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진귀한 특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상의 정의이다. 경전을 근거로 하여 다보여래의 본래 의미를 정의하자면 이 부처님은 진리를 증거하는 증명불(證明佛)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진리를 설한다 할지라도, 나아가 그 진리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불가사의한 오묘한 경지일 때는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사람들은 감히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해서 불가사의한 진리를 증명해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굳은 신심과 진리의 영원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다보 여래를 등장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다보여래의 형상을 찾아보기 힘드나 이를 독특한 모습으로 조성한 다보탑이 1천여 년의 세월 동안 진리를 증거해 가면서 불국사에 의연히 서 있다.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실린 내용을 얘기해 가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기로 하겠다.
다보여래는 아주 먼 옛날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었을 때 크낙한 서원을 세웠다.
'내가 장차 성불하여 중생들을 제도하고 마침내 입멸(入滅)하게 되면 그대로 사리가 되어 어떠한 부처님이든 『법화경』을 설하는 장소에 탑 모양으로 땅에서 솟아나 그의 설법을 증명하리라.'
이윽고 이 구도자는 깨달음을 성취해 다보여래가 되어 『법화경』을 설할 때마다 나타나 그 말씀이 사실과 다름없음을 증명하였다. 드디어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화경』을 설하자 다보여래는 탑으로 우뚝 소스라치게 솟아났다. 높이 2만 리 너비 1만 리나 되는 거대한 탑인데 공중에 덩그러니 솟아나 떠 있는 모습이 그럴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 탑은 가지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향기를 흘려 보내고 있었다. 칠보로 된 그 지붕은 사천왕의 궁전까지 맞닿아 있었으며 난순(欄楯)이 5천이요 감실(龕室)은 천만이었다. 그 속에서 다보여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잘하는 일이다. 잘하는 일이다. 석가 세존이 두루 누구에게나 평등한 큰 지혜로 『법화경』의 진리를 가르치시니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다 진실이요 틀림없다.'
사부 대중은 그 음성을 듣고 깜짝 놀라 기뻐하며 일어나 탑에 합장하였다. 그때 그 무리 속에서 대요설보살(大樂說菩薩)이 일어나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다보여래 뵙기를 간청한다. 다보여래를 직접 보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자 다보여래는 자기의 분신(分身)인 무수한 부처님들이 시방 세계에 널리 펴저 진리를 설하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몸을 나투겠다고 말하였다. 곧 미간 백호에서 빛을 발하자 수많은 부처님들이 홀연히 등장하였다. 그들은 인간 세계의 석가모니가 계신 곳으로 가 다보여래의 보탑에 공양하자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인간 세계로 내려오자 이 세상은 불국토로 변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였다.
수많은 분신 부처님들이 모두 모여 한결같이 보탑을 열기를 희망하자, 석가여래가 일어나 공중에 선즉 모든 무리들이 한 명도 남김없이 기립하여 합장하고는 한 마음으로 다보여래 뵈옵기를 간청하였다. 이윽고 석가모니가 보탑의 문을 여니 그 자리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다보여래를 친견할 수 있었다. 다보여래는 탑 안의 사자좌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잘하는 일이다. 잘하는 일이다. 석가모니불이 이 『법화경』의 진리를 기꺼히 설하시매 내가 이 경을 듣기 위하여 여기 왔노라.'
다보여래는 자리의 절반쯤을 비워 같이 앉기를 권하니 석가모니는 곧 탑 안으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튼다. 이윽고 석가모니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대중들을 자신처럼 아주 높은 허공에 머물게 하고는 큰 음성으로 ' 이 『법화경』을 오래 머물게 하라'고 당부한다.
이상이 「견보탑품」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중국의 대동(大同)이나 용문(龍門) 또는 운강의 석굴사원에는 삼층으로 된 탑을 새기고 그 안에 석가와 다보 두 부처님을 나란히 앉치시킨 불상이 있다. 혹은 탑이 없이 두 부처님만 나란히 조성한 불상도 더러 있다. 이를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불상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충청북도 중원의 이불병좌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보탑에 새겨진 뜻은
다시 다보탑과 석가탑을 떠올려 보자. 그것은 『법화경』 「견보탑품」을 내용으로 하여 조형화낸 신라 문화의 금자탑이다. 우리 신라는 중국 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기획과 기술을 활용하여 불국사 그 비로전 앞에 석가여래와 다보 여래를, 하나의 탑이 아닌 두 개의 탑으로 조형하여 세계적으로도 가장 아름답고 함축성 있는 석탑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다보탑은 쉽게 말해 다보여래의 탑이란 뜻이다. 이를 칠보탑(七寶塔)이라고도 한다. 칠보란 부처님의 일곱 가지 덕성을 보배로운 보물로 비유한 것이다. 탑에는 바로 그러한 부처님의 변함없는 영원할 실상, 즉 법신이 깃들어 있다.
땅에서 솟아오른 탑은 높이가 2만 리(500 유순)요 폭은 1만 리라 했다. 여기서 높이는 인과(因果)의 깊이를, 폭은 덕(德)이 널리 이웃에 스며들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이 탑이 땅에서 솟아올라 공중에 머무른다. 땅은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일컫는 것이어서, 그 땅에서 떠나 공중에 의연하게 자리를 틀고 있다는 것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공(空)에 섰다는 의미이다.
다보탑에는 많은 공간이 있다. 경에서는 사면으로 향기를 자욱히 뿜는다고 하였다. 주석가들은 이를 사제(四諦)의 도풍(道風)이 사덕(四德)의 향기를 불어대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탑은 사천왕의 궁전에 닿았을 뿐더러 무수한 신(三十三天)들이 비오듯 꽃비를 뿌린다고 하였다.
현재 불국사의 돌계단 수는 서른 셋이며, 그것은 하늘 나라로 한발 한발 올라서는 것을 상징한다. 붉은 안개가 서려 있다는 자하문(紫霞門)을 들어서면 그곳은 이미 불국(佛國)이다. 이를 테면 석가탑과 다보탑, 다시 말해서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는 그 불국의 주인공이다. 다보여래는 법신불이요 석가 여래는 보신불이자 화신불이다. 그리고 수많는 부처님의 분신도 화신불이다. 보신불인 석가여래가 『법화경』의 진리를 설하자 법신불 다보 여래가 이를 증명한다. 바로 석가여래의 가르침이 영원 무궁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 그 진리의 세계가 불국이 아닌가. 이 즈음에서 석가답과 다보탑이 서 있는 불국사를 왜 그렇게 이름했는가 하는 그 한가닥 실마리를 알게 된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거기에 강한 신심을 불어넣었던 신라인의 마음이 은은하게 전해오는 두 탑에서 우리는 다보여래의 무언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법화경』의 진리를 설하는 자리, 아니 『법화경』만이 아니라 무상의 깨달음을 증거하는 그 자리에 증명불로서 다보여래가 우리 곁에 탑처럼 굳건하게 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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