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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얼마나 나약하고 또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간계한 이성으로 자신과 상대방을 속이고 독선과 나태에 빠져들기도 하며 잔인한 악마 근성을 발휘하여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깊이 신뢰한 끝에 한 없이 욕망을 추구해 나가다가도 언젠가는 지쳐 쓰러지고 절망하고 만다.
그 무기력과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절대적일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하여 살아가거나 끝없는 쾌락의 추구, 물질적 대상으로의 탐익을 통해서 자신을 망각의 늪 속으로 함몰시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느 대상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속에 있는 그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여 세상에 홀로 우뚝 선 이, 한마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 한 가운데서도 한 줄기 구원의 손길을 보내 인간 스스로로 하여금 그곳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부여해준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이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석가모니이다.
19세기 유럽의 학자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그들 대부분이 석가모니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가상의 인물로 단정을 내렸었다. 그들은 석가모니를 문학적으로 의인화된 신화적 인물로 제시하려 했다. 적어도 그가 실제로 활동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존재했다는 사실 여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오고가다가 그의 체취가 흠뻑 묻어나오는 유적을 발견하고 나서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며 보편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환상에 젖어 있는데다 유신론적인 견해에 물들어 있던 유럽인의 견해로서는 도저히 그들의 신과 같은 놀라운 인물이 미개한 아시아에 실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 그는 누구인가
석가모니는 약 2500년 전, 그러니까 예수가 태어나기 600년 전에 히말라야의 산자락 기슭에서 태어났다. 바로 오늘 날의 네팔 국경 지대에 있는 룸비니 동산(Lumbini)에서 말이다. 그날이 음력 4월 8일이라고 해서 우리는 그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 오신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사카(Sakya, 釋迦)족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였으며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이다. 석가모니의 깨닫기 전 이름은 고타마 싯타르타(Gotama Siddharta)이다. 여기서 고타마란 가족명, 즉 성(性)을 말한다. 그 뜻은 좋은 소를 일겉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구담(瞿曇)이라고 번역했다. 싯타르타란 목적을 달성한 자, 뜻을 성취한 자라는 의미이다. 이 싯타르타 태자가 훗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처절하게 수행한 끝에 깨달음은 얻어 석가모니(Sakyamuni, 釋迦牟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석가란 석가족의 출신 부족임을 일컫는 말이요 무니(muni)란 존귀한 자를 뜻하는 말로 석가족 출신의 존귀한 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석가모니란 석가족의 고타마라는 성을 가진 존귀하신 분인 것이다.
고타마 싯타르타는 깨달았다. 깨달았으므로 고타마 붓다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고타마는 고유 명사이지만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비교해 가면서 설명해 보겠다. 예수라는 말은 고타마나 이씨나 김씨처럼 고유 명사이다. 그리스도란 구세주 메시아를 일컫는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보통 명사이다. 그런데 붓다는 고타마 붓다뿐만 아니라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 과거 칠불(七佛)도 있으며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도 있다. 천불(天佛)도 있는가 하면 만물(萬佛)도 존재하지 못할 법이란 없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우 그리스도란 오직 예수 한 분뿐이다.
예수 이후의 무수한 성인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체계를 세운 중세 서양의 거장들인 아우구스티누스라든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은 비록 그들이 기독교의 뛰어난 성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는 아니다. 따라서 '예수를 유일한 그리스도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아멘'하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반면 같은 종교권의 유대교에서는 예수가 예언자이었을런지는 몰라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슴람교는 예수 대신 마호메트를 최후의 메시아라고 본다. 사정이야 어떻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유일회적 계시, 궁극적 계시라고 부르면서 예수의 역사성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반면 불교는 역사성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해서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아님이 증명된다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위협을 받는데 고타마 붓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고타마의 실존성이 증명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누구라도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붓다가 되기 때문에 불교는 여기에서 하등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고타마 붓다는 최초로 법을 들은 사람으로서 법을 몸소 터득하여 보여준 역사상 초유의 인물이라는데 그 가치를 두는 것이다
석가모니, 그는 왜 위대한 영웅인가
불전(佛傳)에 의하면 고타마 싯타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표현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신화적인 포장이 엿보인다. 그러나 신화라 하여 그것이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신화속에는 실존의 의미가 들어 있다. 따라서 신화적인 얘기라 하여 일소에 붙일 것이 아니라 그 신화를 탈신화하여 실존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중요하다.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여섯 가지〔天,人, 修羅, 畜生, 餓鬼, 地獄〕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크게 한 발 더 건너뛰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외침은 '나 하나만이 제일'이라는 독아론(獨我論)의 발언이 아니다. 인간의 고귀함, 신에 의지하거나 물질에 의거하는 의타심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존성에 대한 우렁참 외침, 천지(天地)건곤(乾坤)을 당당하게 거니는 인간의 본래 모습에 대한 확신에 찬 외침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되살려 오늘날에도 사월 초파일이 오면 자그마한 탄생불(誕生佛)에 관불(灌佛)의식을 한다. 이는 석존 탄생시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몸에 향탕(香湯)을 부었다는 데서 유래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그 탄생불에 물을 부으면서 인간의 존귀한 가치와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스스로 되새기는 데 있다.
싯타르타는 16세에 야쇼다라(Yasodara)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라후라(Rahulla)를 낳고는 생의 아수라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29세에 출가를 감행한다. 이를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라 한다. 왜 위대한 포기냐? 부친을 이어 왕이 될 일국의 왕자가 왕국과, 아름다운 부인, 그리고 귀여운 자식을 뒤로 하고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을 감행한 결과, 그 떠남에서, 그 자기 버림에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 그 깨침의 빛이 영원토록 사바 세계를 비추어 뭇 생명의 갈 길을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교묘하게 위장된 집단적 이기성의 대명사로 곧잘 표현되는 가(家)나 국(國)의 테두리를 박차고 나가 보편적 인류의 지평을 열어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지평을 연 깨달음이 6년간의 각고의 고행 끝에 새벽처럼 밝아온다. 드디어 싯타르타는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던 번뇌 더미를 단숨에 쓸어버리고 위대한 승리자가 된다. 위대한 영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대웅(大雄)이라 하며, 그 분을 모신 궁전을 대웅전(大雄殿)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때 고타마 붓다의 나이 35세. 그날이 2월 28일로 우리나라에서는 성도재일(成道齋日)이라 하여 전국의 사원에서 철야용맹정진을 한다. 깨달은 그날을 기념하여 부처님처럼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이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후 80세에 이르러 열반에 이르기까지 석가모니불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길에서 길로 진리의 전파에 나선다. 회의와 절망, 아만과 질투, 끝없는 욕망과 물욕에 눈멀어 끝내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는, 고통받는 자요 버림받은 자들에게 진리를 설한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어디에 고정됨이 없이 주옥 같은 말씀을 전한다. 이를 응병 여락(應病與藥)이라 하며 대기 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가름침을 뗏목에 비유하여 강을 건너고 난 뒤에 뗏목에 대한 집착을 버리듯 자신의 가르침에도 칩착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45년 동안 교화하고 다녔지만 자신은 한 마디도 말 한 바가 없노라고 했다.
열반에 들려고 할 때 20년 동은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던 아난(阿難)이 흐느끼면서 마지막 설법을 간청한다.
'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에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내가 간 후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쉬지말고 정진하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권위적인 희미한 그림자조차도 한터럭 비치지않는 숭고한 인간, 감히 누구도 구현해내지 못한 완벽한 인간의 모습, 아니 인간의 격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한 석가모니께 누구라도 존경과 사모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무기력과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절대적일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에 의지하여 살아가거나 끝없는 쾌락의 추구, 물질적 대상으로의 탐익을 통해서 자신을 망각의 늪 속으로 함몰시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어느 대상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 속에 있는 그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여 세상에 홀로 우뚝 선 이, 한마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 한 가운데서도 한 줄기 구원의 손길을 보내 인간 스스로로 하여금 그곳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부여해준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이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석가모니이다.
19세기 유럽의 학자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그들 대부분이 석가모니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가상의 인물로 단정을 내렸었다. 그들은 석가모니를 문학적으로 의인화된 신화적 인물로 제시하려 했다. 적어도 그가 실제로 활동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존재했다는 사실 여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오고가다가 그의 체취가 흠뻑 묻어나오는 유적을 발견하고 나서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며 보편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환상에 젖어 있는데다 유신론적인 견해에 물들어 있던 유럽인의 견해로서는 도저히 그들의 신과 같은 놀라운 인물이 미개한 아시아에 실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 그는 누구인가
석가모니는 약 2500년 전, 그러니까 예수가 태어나기 600년 전에 히말라야의 산자락 기슭에서 태어났다. 바로 오늘 날의 네팔 국경 지대에 있는 룸비니 동산(Lumbini)에서 말이다. 그날이 음력 4월 8일이라고 해서 우리는 그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 오신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사카(Sakya, 釋迦)족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였으며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이다. 석가모니의 깨닫기 전 이름은 고타마 싯타르타(Gotama Siddharta)이다. 여기서 고타마란 가족명, 즉 성(性)을 말한다. 그 뜻은 좋은 소를 일겉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구담(瞿曇)이라고 번역했다. 싯타르타란 목적을 달성한 자, 뜻을 성취한 자라는 의미이다. 이 싯타르타 태자가 훗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처절하게 수행한 끝에 깨달음은 얻어 석가모니(Sakyamuni, 釋迦牟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석가란 석가족의 출신 부족임을 일컫는 말이요 무니(muni)란 존귀한 자를 뜻하는 말로 석가족 출신의 존귀한 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석가모니란 석가족의 고타마라는 성을 가진 존귀하신 분인 것이다.
고타마 싯타르타는 깨달았다. 깨달았으므로 고타마 붓다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고타마는 고유 명사이지만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비교해 가면서 설명해 보겠다. 예수라는 말은 고타마나 이씨나 김씨처럼 고유 명사이다. 그리스도란 구세주 메시아를 일컫는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보통 명사이다. 그런데 붓다는 고타마 붓다뿐만 아니라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 과거 칠불(七佛)도 있으며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도 있다. 천불(天佛)도 있는가 하면 만물(萬佛)도 존재하지 못할 법이란 없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우 그리스도란 오직 예수 한 분뿐이다.
예수 이후의 무수한 성인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철학적으로 체계를 세운 중세 서양의 거장들인 아우구스티누스라든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은 비록 그들이 기독교의 뛰어난 성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는 아니다. 따라서 '예수를 유일한 그리스도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아멘'하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반면 같은 종교권의 유대교에서는 예수가 예언자이었을런지는 몰라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슴람교는 예수 대신 마호메트를 최후의 메시아라고 본다. 사정이야 어떻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유일회적 계시, 궁극적 계시라고 부르면서 예수의 역사성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반면 불교는 역사성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해서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아님이 증명된다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위협을 받는데 고타마 붓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고타마의 실존성이 증명되지 않는다 하더라고 누구라도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붓다가 되기 때문에 불교는 여기에서 하등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고타마 붓다는 최초로 법을 들은 사람으로서 법을 몸소 터득하여 보여준 역사상 초유의 인물이라는데 그 가치를 두는 것이다
석가모니, 그는 왜 위대한 영웅인가
불전(佛傳)에 의하면 고타마 싯타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표현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신화적인 포장이 엿보인다. 그러나 신화라 하여 그것이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신화속에는 실존의 의미가 들어 있다. 따라서 신화적인 얘기라 하여 일소에 붙일 것이 아니라 그 신화를 탈신화하여 실존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중요하다.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여섯 가지〔天,人, 修羅, 畜生, 餓鬼, 地獄〕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크게 한 발 더 건너뛰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외침은 '나 하나만이 제일'이라는 독아론(獨我論)의 발언이 아니다. 인간의 고귀함, 신에 의지하거나 물질에 의거하는 의타심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자존성에 대한 우렁참 외침, 천지(天地)건곤(乾坤)을 당당하게 거니는 인간의 본래 모습에 대한 확신에 찬 외침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되살려 오늘날에도 사월 초파일이 오면 자그마한 탄생불(誕生佛)에 관불(灌佛)의식을 한다. 이는 석존 탄생시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몸에 향탕(香湯)을 부었다는 데서 유래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그 탄생불에 물을 부으면서 인간의 존귀한 가치와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스스로 되새기는 데 있다.
싯타르타는 16세에 야쇼다라(Yasodara)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라후라(Rahulla)를 낳고는 생의 아수라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29세에 출가를 감행한다. 이를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라 한다. 왜 위대한 포기냐? 부친을 이어 왕이 될 일국의 왕자가 왕국과, 아름다운 부인, 그리고 귀여운 자식을 뒤로 하고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을 감행한 결과, 그 떠남에서, 그 자기 버림에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 그 깨침의 빛이 영원토록 사바 세계를 비추어 뭇 생명의 갈 길을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교묘하게 위장된 집단적 이기성의 대명사로 곧잘 표현되는 가(家)나 국(國)의 테두리를 박차고 나가 보편적 인류의 지평을 열어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지평을 연 깨달음이 6년간의 각고의 고행 끝에 새벽처럼 밝아온다. 드디어 싯타르타는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던 번뇌 더미를 단숨에 쓸어버리고 위대한 승리자가 된다. 위대한 영웅이 된 것이다. 그래서 대웅(大雄)이라 하며, 그 분을 모신 궁전을 대웅전(大雄殿)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때 고타마 붓다의 나이 35세. 그날이 2월 28일로 우리나라에서는 성도재일(成道齋日)이라 하여 전국의 사원에서 철야용맹정진을 한다. 깨달은 그날을 기념하여 부처님처럼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이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후 80세에 이르러 열반에 이르기까지 석가모니불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길에서 길로 진리의 전파에 나선다. 회의와 절망, 아만과 질투, 끝없는 욕망과 물욕에 눈멀어 끝내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는, 고통받는 자요 버림받은 자들에게 진리를 설한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어디에 고정됨이 없이 주옥 같은 말씀을 전한다. 이를 응병 여락(應病與藥)이라 하며 대기 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가름침을 뗏목에 비유하여 강을 건너고 난 뒤에 뗏목에 대한 집착을 버리듯 자신의 가르침에도 칩착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45년 동안 교화하고 다녔지만 자신은 한 마디도 말 한 바가 없노라고 했다.
열반에 들려고 할 때 20년 동은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던 아난(阿難)이 흐느끼면서 마지막 설법을 간청한다.
'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에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내가 간 후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쉬지말고 정진하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권위적인 희미한 그림자조차도 한터럭 비치지않는 숭고한 인간, 감히 누구도 구현해내지 못한 완벽한 인간의 모습, 아니 인간의 격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한 석가모니께 누구라도 존경과 사모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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