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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단굼왕검시대 서기전 2333년경
유래
조선 정조때 발간된 증보문헌비고 에는 단군이나라 사람들에게 기다란 머리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기록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긴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비녀도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남자 성인은 대개 상투였으며 여자는 얹은머리, 쪽한 머리등 여러가지 머리 모양을 했다.
따라서 머리를 고정시키려면 비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녀자의 머리 모양은 고대 이후 고려 시대가지 별다름이 없어서 고려의 여인들도 머리에 작은 비녀를 꽂았다
조선 중기에는 가체를 올린 얹은머리가 유행 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고
사치가 심해지면서 그에 따른 폐단이 많아지자 영.정조때 이에 대한
금령이 여러 차례 있었다.
순조 중엽에 와서는 얹은 머리 대신 쪽진 머리가 일반화 되면서 다양하게 발전 했다.
이때부터 얹은 머리에 치중했던 사치가 점차 비녀로 옮겨지면서
그종류가 다양해졌고
기교도 발달하여 당시의 공예미슬을 대표한 것의 하나가 되었다
이밖에도 비녀는 관을 고정시키느데 사용 되었다
이 어휘의 생성시기는 단군 연호가 시작 해로 잡는다
단군기원 앞의 고수레 항에서 밝힌 근거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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