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명작 읽기

수멍통 2025. 5. 1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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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명작 읽기, 그 첫걸음에서 얻은 깨달음

작년 연말, 나는 세계 명작소설 작가 100인의 작품을 읽기로 결심했다. 그 시작을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로 삼았다. 학창 시절 읽었던 희미한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그땐 인물 이름도, 줄거리도 가물가물했다.

첫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이었다. 예상대로 읽기는 쉽지 않았다. 이름조차 익숙지 않은 인물들, 복잡하게 얽힌 심리 묘사, 러시아어에서 번역된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부유하다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에 200페이지를 읽자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론 100페이지도 벅찼다. 그래도 읽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다음으로 톨스토이의 『부활』과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로 단련된 덕분인지 이번엔 짜증나는 일이 덜했다.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조금은 익숙해졌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초반부터 가파른 산을 오른 뒤, 그 이후엔 덜 힘들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

■ 『안나 카레니나』 ― 세 가지 사랑, 세 가지 인생

이 작품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불행을 안고 있다.”

이야기는 세 쌍의 커플을 통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삶’을 통찰한다.

  1. 안나와 브론스키 – 욕망의 사랑, 결국 파국
  2. 스티바와 돌리 – 변화 없는 관계, 고착된 현실
  3. 레빈과 키티 – 갈등 속에서 성장하는 사랑

안나와 브론스키는 욕망에서 시작된 사랑이었다. 욕망은 쉽게 불타오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사랑은 집착이 되고, 집착은 파괴를 부른다. 안나는 결국 처음 사랑을 만난 기차역에서 생을 마감한다. 비극은 그렇게 끝난다.

반면, 레빈과 키티는 다투고, 오해하고, 지쳐가면서도 함께 성장해 나간다. 그들의 사랑은 고요하고 단단하다. 그 속엔 ‘몰입’과 ‘소통’ 그리고 ‘죽음의 기억’이 있다.

■ 몰입과 소통,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라

톨스토이는 ‘몰입’의 예로 레빈의 풀베기 장면을 든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참된 집중과 행복이 찾아온다. 자아를 잠시 내려놓은 그 순간, 삶은 가장 충만해진다.

‘소통’ 역시 말이 많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끊임없이 말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레빈과 키티는 눈빛 하나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명했다. 진짜 소통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고, 분노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을 더 사랑하게 된다.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그 말이 품고 있는 역설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다.

■ 나는 어떤 사랑,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 커플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세 유형 모두를 지나온 것 같다. 한때는 안나처럼 욕망에 흔들리기도 했고, 어느 시절엔 돌리처럼 현실에 머무르기도 했으며, 지금은 레빈과 키티처럼 변화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다행이다.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기억하며 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성장은 곧 변화다. 변화는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 성장의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에너지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삶도, 행복도 멈춰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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