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른 놀이

수멍통 2023. 12. 30. 08:51
728x90
반응형

며칠 전에 딸아이가 시댁에 다녀오다가 집에 들렀다

"시댁 어른들 안녕하시냐?'

딸애가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머뭇거리며  사위를  쳐다본다

바깥사돈이 작년에 위암 수술을 하셨기에 그동안 건강이 더 안 좋아졌나? 생각이 스친다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팔고 시골로 이사 가신다고 해서 집안이 어수선합니다, 가신다는 곳은 금산 쪽인데 첩첩산중이고 땅 모양이 삼각형이라 집을 짓기에도 적당하지 않고, 더군다나 옆에 축사가 있어서 환경도 안 좋아  가족들이 반대하는데  아버님만 고집을 부리고 계십니다"

사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을 한다

"시내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서 어머님도 시장가기가 너무 멀다고 반대하셔요" 딸에  까지 거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선은 아니지만 점선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시아버님 로망(roman)이 단독주택에서 자동차 세차를 하시는 거랍니다" 딸애가 부연 설명을 한다

사돈은 개인택 시을 하고 계시다

딸에 말로는 휴일에는 하루 종일 차를 세차하고 정비하는 일에 거의 시간을 보내 신다고 한다

특별한 취미 없이 평생 택시 운전을 천직으로 알고  사신 분들에게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려웠던 시절 오직 운전으로 온 가족의 부양을 했으니 자식들은 몰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나는 그분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런 분이라면 정원이 있는 이 층집  앞마당에서  세차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파란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는 이층 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 한잔 하는 꿈이 퇴직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놓고 살았다.

그런 꿈을 이루려고 하시는데  위치가 너무 아니라고 식구들이 반대를 하는 모양이다

장소를  정한 곳을 설명을 들으니   적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집안 식구들이 극구  반대를 하니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식구들이 반대하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재개발 지구로 정해질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식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면 부동산 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굳이 지금 집을 파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 상식도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고 보는 각도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와서  좋은 생각이 없나 고민을 해 봤다

식구들 이야기도 맞고, 바깥사돈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인 것이다 

다음날  사위보고  소주 한자 하자고  했더니 

" 저는 차를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술을 먹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술을 따를 테니 처남하고 같이 하세요" 한다 

"내가 운전할게 아버지와 같이 한잔 해" 딸애가 사위한테 말한다

아들과 셋이 건배를 한 후 내가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 한시간과 나와 사돈의 한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같지만 심리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솔이 아비 네가 너의 합리적 생각을 접고 아버지의 불합리(?)한  생각에 힘을 실어 드려라.  그것이 후에 네가 가장 잘했다고 너를 칭찬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하고 숙연해지는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사위가 내 술잔에 술을 따라 준다

소파에 앉아 있던 

딸애와 처도 아무런 말이 없다

손녀인 솔이와 봄이   패드를 보면서  옹알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난 순간 속으로 환호했다 "내 말의 뜻이  집안 식구들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구나"

며칠 후에 아이들이 집에 왔다

사위의 손에 많은 짐들이 들려 있었다

술과 안주 거리였다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갔다  사위가 내 잔에 술을 따르더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평생 살면서 어머니가 반대 하는 데도 아버지 편을 들어 준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저를 배신자의 눈으로 쳐다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보다는 아버지가 저를 쳐다 보는 눈빛이 저를 더 없이 행복하고 감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인어른 감사 합니다  집들이 할때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나도 니가 장하고 고맙다".

"인간들의 대부분은 머리하고 가슴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실제 거리는 몇 cm 지만 그 심적 거리는 1광년이 더 떨어져 있다

그 거리를  최대한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이  인간다워지는  지름길인 것이다 , 역시 너는 내 사위다.

그날 사위와 나는 대작을 벌였다.  솔이와 봄이의 순두부 같은 손에 이끌려 이층으로  올라오면서 집들이 선물은 대추나무와 슈퍼 뽕나무로 하자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이 하얀해 지면서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어른노릇 사람 같은 놈한테 진짜로 잘했다고 ㅎ

 

728x90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학개론(1)  (98) 2024.01.10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69) 2024.01.04
모든것이 내책임 이다!!!!  (116) 2023.12.24
극장구경  (94) 2023.12.23
장가든날  (111) 2023.12.19